최근 인기 사회 기사 목록들을 보면 점차적으로 사회가 성차별이 없는 성평등 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성 평등 (性平等, Gender equality)은 모든 사람들이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성별에 근거하여 차별 대우를 받으면 안 된다는 관점이다.-위키백과-

위키백과를 참고해보면 성평등이란 결국 모두가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고 성별에 근거하여 차별 대우를 받으면 안된다는 관점이다. 그런데 이 차별을 불러일으키는 편견에 대해 생각해보자.

이 편견이란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편견이라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나쁜 것인가?


사람의 뛰어난 능력인 예측은 어떠한 정보를 이용하는가?

대표적인 사회적 편견들을 찾아보자. 일단 우리는 대표적으로 상대방의 겉모습을 보고 판단을 내린다. 일단 성별이 무엇인지 예측해볼 수 있을 것이고 우리와 비슷한 인종인지 피부색도 볼 것이다. 사실 우리가 그 사람에 대해 처음 알 수 있는 것은 시각적 정보 뿐이다. 이 시각적 정보를 토대로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인지 도움이 되는 사람인지 판단해야만 한다. 하지만 이 때 판단에 쓰이는 것들은 전부다 편견밖에 없다. 심지어 “그 사람이 사람이다.”라는 정보조차도 우리가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겉모습에 대한 편견에 지나치지 않는다. 사람의 탈을 쓴 로봇 아니면 외계인 또는 신(GOD)인지 누가 아는가?


우리에게 편견이 아닌 정보가 있는가?

우리가 명백한 사실적 정보라 생각한 것들도 사실은 잘못된 정보들일 수 있다. 블랙스완 사례만 봐도 알 수 있다. 아무리 통계로 95%확신해도 일평생 자신은 흰백조만 보았어도 실제 블랙스완은 존재할 뿐이다. 특히 이런 일은 과학혁명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어떠한 현상에 대해 잘 설명하는 이론을 만들었다고 치자. 처음 초반에는 그런 현상들에 대해서 이론이 잘 예측하고 설명해준다. 그러다 보니 점차 사람들이 그 이론에 빠져들고 수많은 사람들이 그 이론(도구)를 가지고 더욱 다양한 연구들을 진행하고 논문이 쏟아져 나온다. 하지만 보통의 이론들이 그렇듯이 연구하다 보면 이론과 현상이 일치하지 않는 오류가 하나 둘 발견되기 시작한다. 처음에 연구자들은 본인들이 실험에 대해 잘못 이해하거나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렇다고 믿는다. 하지만 만약 그 이론이 완벽하지 않은 이론이라면 점차 하나 둘 연구자들이 이론의 오류를 발견하고 결국 그 문제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여 이론은 폐기수순을 밟는다. 과학 쪽에서는 늘 상 이런 일이 일어난다. 그나마 교과서에 보고 있는 과학이론들은 그 수많은 현상에 대해 한치의 오차도 없이 설명했기에 아직까지 살아있다. 만약 우리의 과학적도구 더욱 발달하여 기존의 이론으로 설명되지 않는 현상들이 나타나면 우리는 이론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이론을 발견해야 할 것이다.


우리 인류는 잘못된 정보를 고쳐 나가고 있는 중이다.

내가 얘기하고자 하는 것은 편견 없는 정보란 거의 있을 수 없다. 편견 없는 정보는 사실상 우주의 모든 현상을 설명 할 수 있는 불변의 이론이라 볼 수 있다. 사실상 그 전까지는 전부 편견된 정보라 볼 수 밖에 없다. 정보의 근원은 우리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 경험은 우리의 신체적 감각으로부터 얻었고, 신체적 감각으로부터 온 정보는 늘 일정 오류를 가지고 흡수되어 진다. 착시 현상부터 시작해서 인간의 감각 오류 사례는 수도 없이 연구된 것도 많고 사례도 정말 많다. 특히 경험이란 것은 지극히 주관적이다. 인간은 서로에게 같은 고통을 주어도 자신의 고통이 더 아프다고 판단하는 것이 인간이다.


색깔 편견에 대해 말해보자.

사실상 이것도 우리가 시각에 의존을 많이 하다 보니 생긴 정보의 일부분이라 볼 수 있다. 빨간색은 정지, 위험, 열정 등의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있다. 반면에 초록색은 안전, 가도 좋다는 신호, On켜짐 등의 사회적 암묵적 합의를 가지고 있다. 이 또한 편견인데 이런 정보들이 나쁘다고 볼 수 있을까?


겉모습에 대한 편견없이 남자와 여자를 어떻게 구별하나?

현대에 와서는 치마는 여자를 상징하고 바지는 남성을 상징한다.(시대에 따라 상징은 변화한다.) 이는 대부분의 남성이 현대에 와서는 치마를 입지 않기 때문에 치마를 여성의 상징처럼 픽토그램이나 이미지에 사용한다. 이는 정보전달에 있어서 대다수에게 효율적이고 빠르게 전달 할 수 있다. 이미지를 사용하게 되면 무조건 우리의 남성, 여성에 대한 편견이 들어 갈 수밖에 없다.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남자에 대한 이미지는 사실상 편견이지 않은가? 남자를 정의하는 조건은 성기 말고 무엇이 있는가 그림속에서? 예쁘면 여자이고 또는 머리가 길면 여자인가?


편견의 유용성

물론 특정 이미지를 사용하지 않고 글자로 남자, 여자 써 놓는 방법이 있다. 그러면 외국인들은? 각국 언어로 다 적어 놓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만큼 시각적으로 표시된 픽토그램이나 이미지는 언어를 뛰어넘어 각국에서도 서로 어느정도 단번에 정보를 알아차릴 수 있게 도와준다.(물론 각 사회마다 문화가 달라서 전혀 의미 없을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에게 유용하다는게 중요하다.) 우리는 시각적 이미지에 대한 편견이 엄청나게 우리 일상생활속에 이점을 주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사용하고 있다.


편견을 하지 말라는 사회, 편견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개인

이러한 사회적 편견은 개개인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편리한 기능을 제공한다. 어떻게 보면 하나의 약속이라고 볼 수 있다. 예로 남자화장실은 (바지 입은 사람, 파란색)으로 표시되고 여자화장실은 (치마 입은 사람, 빨간색)으로 표시된다. 물론 이런 약속은 결국 남자는 바지,파란색이라는 편견(고정관념)이 강해 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픽토그램은 각 대상에 대한 특징들을 뽑아낸다. 그 특징들을 통해 빠르고 쉽게 정보를 전달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이 특징들은 가장 대중이 생각하는 특징들이라고 생각하는 것들을 사용하는데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화장실 표시 같은 것이 그렇다. 바지를 입는다고 모두 남자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하지만 화장실 표시는 대다수의 사람들(대중)에게는 빠르고 확실하게 ‘남자화장실’이라는 정보를 줄 수 있다. 성평등은 젠더이분법을 제거하는 쪽에 속한다. 점점 사회는 겉모습을 보고 상대방을 차별하지 말 것을 강요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 이 얘기는 즉 성차별, 나이차별, 민족차별, 나라차별 등을 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그런데 이런 차별이나 편견은 사람이 예측하고 정보를 학습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과정이다. 이와 같은 인간의 기본적인 학습 방식과 부딪힌다.


우리는 서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는가?

 우리 인류는 사실상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로서 가장 위험한 것은 다름 아닌 ‘타인’이다. 지금이야 사회적 합의에 따른 법이 살인 등을 막지만, 만약 법과 질서가 무너진 경쟁사회 속에서는 타인이 위험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지금도 살인까지는 자주 일어나지 않지만 여전히 사기꾼들이 넘쳐나지 않는가?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 대항하기 위해 편견을 가지게 되고 차별을 개인적 보호 차원에서 할 수 밖에 없다. 범죄자에게 당신 착한 사람이라고 물어볼 것인가? 어떤 사람이 착한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대화를 통해 알아 낼 수 있는가? 어떤 사회이든지 스파이나 사기꾼은 존재한다. 이건 인간사회만 그런 것이 아니다. 개미사회에서도 볼 수 있고 어떠한 경쟁적인 사회에서는 늘 볼 수 있는 사례이다. 차별을 막기위해 편견 등을 없애는 작업 특히 여자나 남자나 기존 여성전용, 남성전용들에 대한 벽이 무너지고 있다. 그렇다면 그에 따른 성의 구분에 따른 이점들도 사라질 것이다. ‘Girls can do anything.’ 이란 말은 결국 ‘Boys can do anything’으로 이루어진다. 세상에 무조건적으로 좋은 것은 없다라는게 내 생각(편견)이다. 이제는 당연 양성 모두 각 성별이여서 얻었던 이점들은 단점들과 함께 사라진다. 흔히 유리천장이 깨지면 유리바닥도 깨진다고 한다. 뭐가 각각 개인에게 좋은지는 솔직히 모르겠다. 어느 정도 편견이 있는 사회가 편할지 아니면 편견은 없고 모두는 동일하니까 동등한 혜택, 동등한 불이익을 받는게 맞는지. 결국 이렇게 길게 주저리 주저리 썼지만 이 글 또한 편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


물론 이런 편견들은 사회적 강요에 의해 다른 사람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략할 수 있다.

최근 들어서는 이제 남자아이에게는 파란색 장난감, 여자아이에게는 분홍색 장난감을 강요해서는 안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20&aid=0003155357&viewType=pc)


이런 기사가 점차 사회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탈코르셋 운동도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의 공통점은 본인이 사회적 압박, 강요에 의해 피해 본 사람들이다. 본인은 화장하기 싫은데 안하면 사회생활에서 밀려나버리고 심지어 왕따까지 시킨다고 한다. 물론 저런 사회적 억압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원래부터 남 눈치 안보고 살았던 사람들)은 저들을 이해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가 저런걸 법적으로 강제하지 않았으니 그들은 자유롭게 고를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초등학생들의 화장문제만 봐도 알 수 있다. 처음은 물론 몇 명 개인의 취향으로 시작되었다. 하지만 점차 모든 학생들이 화장을 하기 시작했고 거기에 참여하지 않은 학생은 저절로 그 또래 문화에서 밀려나갈 수밖에 없다. 공동체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남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밀려나는 것은 개인적으로 큰 스트레스를 안겨줄 수밖에 없다. 이들은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경우이다. 이러한 집단에 대한 압박감이 운동으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운동조차 결국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운동으로 번져서는 안된다. 탈코르셋 운동을 한다고 해서 모두에게 화장을 하지 말라고 강요하는 행위는 또다른 억압과 잘못된 편견이다.



다음은 평화로운 집단이 미디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정보가어떻게 과대해석되고 개인들의 싸움이 집단 싸움으로 번지게 되는지 잘 묘사한 애니메이션 동영상이다.  정확히는 사용자가 플레이하는 영상을 녹화한 것이다. 

직접 게임에 참여 해볼 수도 있다. 하고 싶다면 We Become What We Behold(https://game.hyeon.me/wbwwb/)에 접속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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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아이는 자동차장난감, 여자아이는 인형, 이것은 우리가 사회적 프레임을 강요한 것인가?

다른 포유류들의 선택을 눈여겨 보자

"성별 장난감 선호 태어날 때 결정돼"  기사

http://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0/01/11/201001114002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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